퇴근하고 돌아온 현수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며 유미를 부른다.
"유미야, 음악 좀 틀어줄래?"
"그럴까? 근데 어떤 음악이 듣고 싶어?" "글쎄, 오늘 비도 오고 하니 조용한 음악이 듣고 싶은데?" "그럼 조용한 재즈 피아노 풍 음악 괜찮아?" "어, 그거 좋다. 약간 클래식한 분위기도 섞어주면 좋을 것 같아" "알겠어, 걱정마" "그래, 딱 30분만 부탁할게. 30분 후에는 집 앞 공원으로 운동 갈 거니까 그 때는 신나는 음악으로 바꿔서 틀어줘. 알지 내 스타일?" |
유미는 여자친구가 아닙니다. 유미는 현수가 얼마전에 새로 산 "음악 제네레이터" 입니다. 말 그대로 음악을 만들어 주는 발전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형태가 없어서 만질수도 없습니다. 유미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을 듣는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Siri"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폰에 살고 있는 시리는 이미 어느 정도 사람의 말을 알아 듣고 맥락에 맞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와 비슷한 일이 음악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이해한 인공지능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상황도 가능하지 않을 까요?
"유미야, 나 친구만나서 밥도먹고 좀 놀다가 올건데 그 사이에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대해서 공부좀 해줘. 그리고 다른 음악스타일 중 어떤것과 가장 어울릴지 한번 데모작업좀해 줘. 서너곡 정도만 들려주면 좋겠다. 그럼 좀 이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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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수는 작곡가 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직접 작곡하는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유미와 대화하면서 곡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라빈스키라는, 현수에게는 아주 낯선 클래식작곡가 스타일의 곡을 써보고 싶은데 현수에게는 곡이 너무나도 어렵게 들립니다. 그리고 스트라빈스키 스타일의 곡을 쓰기 위해서 현수가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유미라면 어떨까요?
유미는 인공지능입니다. 말하자면 공부의 신인 것입니다. 현수에게 부탁받은 유미는 인터넷에서 스트라빈스키 곡의 악보를 모두 수집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분석에 들어가 스트라빈스키가 가진 작곡 기법의 특징을 모조리 파악해 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작곡가들의 작곡 기법과 믹스를 시도합니다. 한번은 베토벤 스타일과 또 다른 한번은 마이클잭슨 스타일과 또 다른 한번은 박명수 스타일과 섞어 봅니다. 유미에게 한계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하는데 불과 서너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물론 실제로 얼마나 걸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상상에 불과합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현수는 유미가 새로 믹스해 놓은 곡들을 들어봅니다.
"와, 이거 생각보다 좋은데? 스트라빈스키와 박명수를 섞은게 이렇게 괜찮게 들릴줄은 몰랐어"
"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네가 어떤걸 좋아할 지 몰라서 그냥 여러가지를 해봤을 뿐이야. 현수 네가 좋아한다면, 앞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음악 많이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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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에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유미는 창작은 할 수 있지만 감상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의 특징을 파악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일에는 귀신같지만,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유미는 오직 현수가 그것이 "좋다"고 말하면 그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할 뿐입니다.
현수는 이렇게 인공지능 유미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을 세상에 발표할 계획입니다. 유미가 현수보다 더 빨리 공부하고 분석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 현수는 이것들을 들어보고 이 중에 어떤 것이 좀 더 인간에게 감성적 공감을 불러 오는지 판단을 하는 방식입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콜라보레이션인 셈입니다.
현수가 구입한 "음악 제네레이터" 인공지능 유미는 이처럼 현수와 어떤 협업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공지능 창작자가 될 것입니다. 회창이, 지연이, 현수 모두 똑같은 음악 제네레이터를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구입 이후에 어떤 음악을 같이 공부해 나갔는가, 그리고 각자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더 선호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창작 엔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직감하셨겠지만, 현수가 작곡을 하기 위해서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가져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피아노를 잘 쳐야할 이유도, 화성학을 공부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물론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연습을 해야하겠지만, 작곡을 잘 하고 싶다면 따로 공부할 필요없이 이렇게 유미와 협업을 해나가면 됩니다. 인공지능과의 협업,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공부법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 유미와 협업하는 세상이 온다면 당신도 훌륭한 작곡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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